그랜트 우드의 ‘아메리칸 고딕’, 대중적 아이콘이 된 문화사

그랜트 우드의 1930년 회화 ‘아메리칸 고딕’은 엄격한 표정의 농촌 남녀가 흰 집 앞에 뻣뻣하게 선 모습을 담은 작품으로, 대중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미술사학자 완다 콘은 신간에서 작품이 어떻게 ‘쇠스랑을 든 부부’라는 익숙한 이미지로 변해 왔는지 추적합니다.
콘의 책 제목은 ‘쇠스랑을 든 부부: 이젤에서 아이콘으로 변한 아메리칸 고딕’입니다. 콘은 지난 60년 동안 작품이 상징적인 이미지로 바뀌는 과정을 지켜봤다고 말합니다. 작품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에드바르 뭉크의 ‘절규’와 나란히 대중의 의식에 깊이 자리 잡은 이미지로 묘사됩니다.
그러나 작품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관람객들은 인물들을 부모와 자녀로 보지 않았으며 작은 마을 출신으로도 이해하지 않았다고 콘은 설명합니다. 작가가 작품을 통해 의도한 바와 대중이 받아들인 방식이 달랐다는 점에서, 콘은 이 작품을 미술사에서 두드러진 사례로 꼽습니다.
아이오와를 기반으로 활동한 우드와 그의 작품은 미술계에서 꾸준히 비판받거나 외면당했습니다. H.W. 잰슨의 ‘미술사’는 1962년 초판에서 우드를 다루지 않았고, 작품은 2006년 출간된 제7판에 이르러서야 실렸습니다. 콘은 관련 미술사 문헌을 살펴보며 ‘아메리칸 고딕’에 대한 서술이 수동적이고 공격적인 태도를 보였다고 말합니다.
콘은 우드의 고충을 계속 볼 수 있었다고 하면서도, 그를 함께 있으면 한없이 즐겁고 사랑스러우며 창의적인 사람으로 기억한 이들도 있다고 덧붙입니다. 우드를 어둡고 우울한 인물로만 보는 대신 균형 잡힌 시각이 필요하다는 설명입니다.
콘은 1983년에는 지금 쓴 책을 쓸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당시에는 작품에 관한 기초 자료가 부족했고, 이미지가 일상에서 일시적으로 벌어지는 일이나 정치적 사건에 활용되는 양상도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컴퓨터가 이미지를 변형하고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자원으로 만들 것이라는 점 역시 예상하기 어려웠다고 덧붙입니다.
Source: theartnewspap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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