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프 아이와모토: 잊혀진 추상화의 거장





솔 르윗이 유명해지기 전, 그는 현대 미술관(MoMA)에서 경비원으로 일했다. 라프 아이와모토도 마찬가지였다. 1950년대 후반, 미술관의 직원들은 르윗, 댄 플라빈, 로버트 맹골드, 로버트 라이먼과 같은 예술가들로 구성되어 있었고, 아이와모토는 그들과 함께 아이디어를 나누며 자신의 시각 언어를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들의 이름이 널리 알려진 반면, 아이와모토의 이름은 대중의 시선에서 사라졌다. 최근 몇 년 동안 아이와모토의 이야기는 더 넓은 청중에게 다가가고 있으며, 홀리스 태거트에서 열리는 새로운 전시회 "옥타곤 변주곡"은 그의 20년간의 작업을 조명하고 있다. 이 전시는 특히 그가 후반 생애에 집착했던 기하학적 형태인 옥타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는 2023년 갤러리에서 열린 아이와모토의 초현실적 회화 전시 "야생 성장"과 함께 그의 작업을 미국 추상화의 중심으로 끌어올리려는 가장 지속적인 큐레토리얼 노력으로 평가된다.
아이와모토의 작업에 대한 관심이 다시 돌아오면서, 많은 이들이 그와 그의 작품의 대조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있다. 큐레이터 제프리 웨흘슬러는 "그는 매우 좋은 사람으로, 자신의 작업과 일반적인 것들에 대해 매우 편안했다"고 말했다. "그의 예술은 같은 사람에게서 나온 것처럼 보이지 않았다. 그는 매우 편안하고 웃고 있었지만, 그의 작업은 매우 정밀했다." 아이와모토의 회화는 세밀한 주의력을 반영하며, 정밀하고 구성적이지만 결코 차갑지 않다. 그의 작업은 색상과 형태에 대한 놀이의 감각을 유지하고 있다.
아이와모토는 1927년 호놀룰루에서 일본 불교 부모에게 태어났으며, 10대 시절 진주만 폭격을 목격했다. 그는 제2차 세계 대전에서 가장 많은 훈장을 받은 일본계 미국인 부대인 442연대 전투팀에서 복무한 후 1948년 뉴욕으로 이주했다. 그는 바츨라프 비틀라칠과 바이런 브라운에게 배우며 뉴욕의 아방가르드 중심에 들어섰고, 1955년에는 알프레드 레슬리와 루이즈 네벨슨과 함께 루기나 갤러리에서 첫 전시를 가졌다. 1958년에는 휘트니 미술관의 그룹 전시에 포함되며 뉴욕 미술계에 정식으로 진입했다.
아이와모토의 초기 작품은 초현실적인 생태계를 묘사했으며, 열대 식물은 동물 해부학으로 변형되고, 해양 생물은 꽃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작품들은 그의 하와이 배경과 일본 장식 감각을 반영하고 있다. 1960년대에는 기하학적 추상으로 전환하며, 수제 형태의 캔버스에서 작업했다. 그는 뉴욕의 도시 격자에 매료되어 이를 기하학적 추상 격자로 변형시켰다.
1970년대부터 아이와모토의 대부분의 작품은 옥타곤이라는 단일 기하학적 형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으며, 그는 이를 통해 새로운 배열과 색상 대비를 실험했다. 그의 작품은 뉴욕의 광장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더 복잡해졌다. 그의 작업은 상업 미술 세계의 중심에서 조용히 그리고 철저하게 진행되었으며, 그의 여동생인 베르니스 아이와모토 벅스바움은 그를 "과소평가된 천재"로 묘사했다.
Source: www.artsy.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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